사는 이야기!

경주 표암

피코7 2008. 3. 9. 12:54

표암이란 ‘박바위’, ‘밝은바위’를 뜻하는데, 신라 6촌 가운데 알천 양산촌의 시조 이알평이 이 바위에 내려와 세상을 밝게 하였다하여 표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B·C 69년 6촌장이 여기에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 건국을 의결했으며, 그후 B·C 57년 신라가 건국되었다. 이와같이 표암은 경주이씨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 건국의 산실이고 화백이라는 민주 정치제도의 발상지인 성스러운 곳이다.
이러한 뜻을 새긴 유허비가 조선 순조 6년(1806)에 세웠고, 1925년에 표암재가 건립된 뒤 매년 3월에 그 뜻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표암은 『박바위』, 『밝은 바위(光明巖)』를 뜻한다. 이곳은 신라6촌(新羅六村) 가운데 근본(根本)이 되는 밑돌부(及梁部)라는 부명(部名)이 붙여진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시조(始祖) 이알평공(李閼平公)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다. 서력 기원전 69년에 6촌장이 여기에 모여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열고 신라건국(新羅建國)을 의결했으며, 그후 서력 기원전 57년에 신라가 건국되었다. 이와 같이 표암은 경주이씨(慶州李氏)의 혈맥(血脈)의 근원지(根源地)인 동시에 신라건국의 산실로서 '광명이세(光明理世)'라는 백성을 다스리는 큰 뜻을 밝히고, 화백이라는 민주정치 제도의 발상(發祥)을 보인 성스러운 곳이다. 이러한 뜻을 새긴 유허비(遺墟碑)가 조선(朝鮮) 순조(純祖) 6년(1806)에 세워졌고 1925년에는 표암재(瓢巖齋)가 건립된 뒤 전사청(典祀廳), 내외삼문(內外三門), 경모대비(景慕大碑), 천강지(天降地) 등이 건립되어 더욱 그 뜻을 기리며 매년 3월 중정(中丁)에 향사(享祀)를 봉행하고 있다.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었다. 경주이씨() 대종회가 소유하고 있다. ‘박바위’, ‘밝은 바위[]’라는 뜻을 가진 바위로, 탈해왕릉() 서북쪽의 박바우산에 있다. 경주이씨 시조이자, 신라 6촌() 가운데 근본이 되는 알천양산촌()의 시조인 이알평()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라고 한다.

표암 이알평공은 기원전 117년 한무제 원수6년 갑자에 하늘로부터 진한 땅의 표암봉인 밝바위로 처음 내려오셨고, 양산촌장으로서 부족들을 다스리며 혁거세를 양육 시켰고 신라 초대왕으로 추대하시는데 6부 촌장의 의장으로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화백회의제도를 시행하셔서 오늘날의 민주주의 제도를 구현 시키신 선구자였음을호언 할 수 있다.

서기 32년 신라 3대왕인 유리왕 9년에는 진한 6촌을 6부로 개칭할 때 지금의 경주시 일원에 해당되는 양산촌의 급량부라 부르고 성씨를 이씨(李氏)라고 사성 하였으니 경주라는 지명을 붙여서 경주 이씨(慶州李氏)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신라건국(新羅建國)의 모체(母體)인 사로(斯盧)의 6부(六部) 중 알천양산촌(閼川陽山寸)을 다스렸다

토요일 나의 뿌리를 찾아서 경주로 향했다.

이알평 시조할아버지로 부터 경주이씨의 후손들의 흔적을 찾고자...

경주 동천동 표암.경주이씨의 시조 발상지와 표암제, 경주이씨 시조경모비,그리고 해마다 향사를 올리는 곳. 경주이씨 40세손.월성군파  21세 지수할아버지로부터

분파되어 월군파로...

월성군파의 사단은 논산에 있는데 언젠가 그기도 찾아야만...

 

 

 조동문

 

시조 할아버지  경모비

 제기고

 

 

 표암제

 악강묘와 표암제

 악강묘

 표암제뒤의 표암, 박바위

 

 

 솔숱에 둘러 쌓인 표암모습

 산앙문을 열면 표암제가.... 향사올리는곳

 주차장에서 본 표암 모습

 유허비각에서 본 모습

 유허비

 

 시조 발상지

 광임대

[경주이씨의 유래]
시조는 초기 신라의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及梁部)의 촌장으로 전해지는 표암공(瓢岩公) 알평(謁平)이다. 표암공이라는 호칭은 알평이 애초에 경주 박바위에 강림했다는 전설에서 취해진 것이다. 기원전 117년 한무제 원수6년 갑자에 하늘로부터 진한 땅의 표암봉인 밝바위로 처음 내려오셨고 양산촌장으로서 부족들을 다스리며 혁거세를 양육시켜고 신라 초대왕으로 추대하시는데 6부 촌장의 의장으로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화백회의제도를 시행하셔서 오늘날의 민주주의 제도를 구현시키신 선구자였씀을 호언 할 수 있다. 서기 32년 신라 3대왕인 유리왕 9년에는 진한 6촌을 6부 로 개칭할때 지금의 경주시 일원에 해당되는 양산촌의 급량부라 부르고 성씨를 이 씨라고 사성하였으니 경주라는 지명을 붙여서 경주 이씨(慶州 李氏)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년) 유리왕이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꼐 사성하여 양산촌을 급량부로 개칭하고 그에게 이씨의 성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그후 후손들은 알평의 36세손으로 신라 진골출신인 거명을 중시조로 하고, 시조의 발상지인 경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거명은 신라 때의 인물로 진골(眞骨) 출신이다. 그는 시조 알평의 36세손이며 시조로부터 현재(熙字돌림)까지는 대략 75대(약 2,000년)가 된다. 대략 75대(약2,000년)가 된다.경주이씨의 세계는 중시조 거명의 16대손(고려 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경주 이씨의 세계는 거명의 17세손(고려 말기)에서 8파로 대별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이씨의 발전]
8대파는 평리공파(評理公派)·이암공파(怡庵公派)·익재공파(益齋公派) ·호군공파(護軍公派)·국당공파(菊堂公派)·부정공파(副正公派)·상서공파(尙書公派)·사인공파(舍人公派) 등이다. 이 밖에 지손(支孫) 계통으로 판전공파(判典公派)·시랑공파(侍郞公派)·석탄공파(石灘公派) 등이 있다. 한편 경주이씨 분파도(分派圖)에는 전술한 10본의 분적종 중 성주이씨와 우계이씨는 거명의 윗대에서 분파되었으며 나머지는 그 아랫대에서 분파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에 들어와서도 문과 급제자 178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을 비롯하여 10여 명의 공신과 많은 학자, 명신을 배출하였다. 8대파 중 상서공파의 백사(白沙:李恒福)집이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익재공파의 세칭 8별(鼈) 집과 완(浣)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경주이씨가 조선에 배출한 상신·문형 가운데 백사집에서 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대제학 2명이 나왔고, 8별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 각 1명, 국당공파 중의 정순공(靖順公:誠中) 후손에서 좌의정 1명이 나와 이들 3파가 사실상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루었다. 고려말의 대학자이자 외교가, 문장가, 충신이기도 했던 익제(益齊)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 고려 때의 경주 이씨를 대표한다. 이제현은 충선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여러 방면에 공적을 남겼고 문장가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외교가였다.
조선시대에는 8형제가 모두 문장에 뛰어나 8문장으로 꼽히는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인(李公麟)의 아들들과 임진왜란이 터지자 유성룡을 도와 병참 책임을 맡는 등 큰 활약을 한 이시발(李時發)을 비롯하여,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유명한 오성대감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5차례나 병조판서를 역임하여 국난을 수습, 전후 정승에 올라 당쟁 을 막는데 힘쓴 조선시대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청백리에 올랐다.
[가문의번영]
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에 들어와서도 문과 급제자 178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을 비롯하여 10여 명의 공신과 많은 학자와 명신을 배출하였다.
8대파 중 상서공파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집안에서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세칭 8별(鼈) 집으로 불리우는 익재공파와 이완(李浣) 대장을 낳은 국당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경주이씨가 조선에 배출한 상신·문형 가운데 백사집에서 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대제학 2명이 나왔고, 8별집에서 좌의정과 대제학 각 1명, 국당공파 중의 정순공(靖順公) 이성중(李誠中) 후손에서 좌의정 1명이 나와 이들 3파가 사실상 경주이씨의 주축을 이루었다.

고려말의 대학자이자 외교가, 문장가, 충신이기도 했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 고려 때의 경주 이씨를 대표한다. 이제현은 충선왕부터 공민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여러 방면에 공적을 남겼고 문장가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외교가였다.
조선시대에는 8형제가 모두 문장에 뛰어나 8문장으로 꼽히는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린(李公麟)의 아들들과 임진왜란이 터지자 유성룡을 도와 병참 책임을 맡는 등 큰 활약을 한 이시발(李時發)을 비롯하여,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유명한 오성대감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5차례나 병조판서를 역임하여 국난을 수습, 전후 정승에 올라 당쟁 을 막는데 힘쓴 조선시대 4대 명재상의 한 사람으로 청백리에 올랐다.
근대 인물로는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李始榮)과 재계의 거목이었던 삼성그룹의 이병철회장이 있다.



[계 파]
경주이씨는 중시조 이거명의 17~21세손에서 크게 14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크고 작은 70여개 파로 분파된다.
-평리공파(評理公派) : 16세손 이인정(李仁珽)을 파조로 한다.
-이암공파(怡庵公派) : 17세손 이관(李琯)을 파조로 한다.
-익재공파(益齋公派) : 17세손 이제현(李齊賢)을 파조로 한다.
-호군공파(護軍公派) : 17세손 이지정(李之正)을 파조로 한다.
-국당공파(菊堂公派) : 17세손 이천을 파조로 한다.
-부정공파(副正公派) : 17세손 이매(李邁)를 파조로 한다.
-상서공파(尙書公派) : 17세손 이과를 파조로 한다.
-사인공파(舍人公派) : 17세손 이수(李蓚)를 파조로 한다.
-판전공파(判典公派) : 15세손 이강을 파조로 한다.
-월성군파(月城君派) : 21세손 이지수(李之秀)를 파조로 한다.
-직장공파(直長公派) : 19세손 이양오(李養吾)를 파조로 한다.
-석탄공파(石灘公派) : 19세손 이존오(李存吾)를 파조로 한다.
-진사공파(進士公派) : 19세손 이양중(李養中)를 파조로 한다.
-교감공파(校勘公派) : 19세손 이존사(李存斯)를 파조로 한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항 덕실마을  (0) 2008.03.09
경주 대릉원  (0) 2008.03.09
17대 대통령취임식  (0) 2008.02.25
17대 대통령취임식 참석  (0) 2008.02.25
17대 대통령 취임식 참석!  (0) 2008.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