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으면....

왜관철교

피코7 2015. 2. 18. 13:08

 

 

 

 

 

 

 

 

 

 

 

아픈기억의 흔적이 시간과 더불어 잊혀질 수 있을까?

칠곡 왜관 철교는 한국의 역사와 더불어 변천해 왔다. 1905년 경부선의 개통과 더불어 단선 철교인 낙동강 대교(洛東江大橋)로 출발하였다. 왜관읍 석전리에서 약목면 관호리에 이르는 경부선의 단선 철교였다. 다리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도선장을 통해 낙동강을 왕복하였는데 ‘구 왜관 나루-공암 나루[또는 창마 나루]’를 이용하거나, ‘왜관 나루-강정 나루’를 이용하였다.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철도 교량은 낙동강을 건너는 첫 번째 철골구조 다리가 되었다. 그러나 인근 지역의 사람과 물자의 수송을 위해서 왜관의 나루는 여전히 중요한 교통 수단이었다.

 

경부선의 복선화와 더불어 1941년 11월 30일, 이곳에서 100m 상류부에 새로운 노선과 교량이 가설되면서, 기존의 철교는 기차의 통행이 폐쇄되고 국도 4호선의 도로 교량으로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구 철교(舊鐵橋) 또는 인도교(人道橋)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람, 가축, 마차, 차량까지 모두 인도교를 통해 낙동강을 건널 수 있게 되었고, 왜관의 나루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낙동강이 최후의 저지선으로 정해졌다. 북한 인민군이 낙동강을 건너는 것을 막기 위해 철교의 폭파가 불가피했다. 8월 3일 오후 8시 30분 왜관에서 두 번째 교각이 유엔군에 의해 폭파되었다. 1953년 휴전 후 폭파된 구간을 목교(木橋)로 연결하여 다시 인도교로 이용하였다. 1970년에는 국도 4호선의 교량으로서 왜관교가 가설되었다.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비로소 원활해졌다.

 

인도교는 목교 구간의 노후화로 1979년 11월 이후 통행이 전면 통제되었다. 그리고 1993년 목교 구간을 철교로 복구한 후 보행 전용 도로로 개통하고 이후 호국의 다리라고 부르고 있다. 6·25전쟁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이곳에 있었고, 혈전의 대가로 대구를 지키고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칠곡 왜관 철교는 2011년 6월 집중 호우로 인해 약목 방면 2번 교각이 무너지면서 상판 2개와 다리 위쪽 철구조물이 함께 붕괴되었으나, 이듬해에 복원되어 다시 개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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