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산꾼 산행이야기

경주 오봉산 1

피코7 2012. 2. 12. 19:57

2012.2.12

경주 오봉산 산행.

겨울답지 않게 따스한 날씨속에  가까운 경주 오봉산을 찾았다.

건천ic에서 내려 신평리...윗장시로...신평2리 마을 회관옆 주차장에 주차후 먼저 산세를 살펴본다.

여근곡이 먼저 눈길을 잡는다.

참 묘하게,, 생겼다.

주차장에서 이정표 따라 이동하면서 첫 갈림길에서 유학사방향으로...옥문지를 지나고 나무계단길을 ,쉼터를 지나 갈지자의 오름길로

부산성벽으로 ....능선을 지나니

지난번 낙동정맥길이 눈에 바로 와 닿는다.

오봉산 정상에서 점심. 주사암으로, 다시 마당바위로... 그리고 되돌아 내려온다. 임도 벗어나 512봉으로 ...유학사 길로 접어 드니 산행이 마무리되고...

 

오봉산과 여근곡

 

 

여근곡이란 문자대로 '여자 성기의 골'이라는 의미이다. 이 부근의 동리 사람들에게 여근곡을 물으면 곧 알려준다. 주사암에 위치하고 있는 오봉사(주사산)의 동북산 기슭이다. 그 산 아래에는 마치 여자의 성기에서 흐르는 것 같은 물이 고이는 작은 못도 조성되어 있다. 고속도로와 일반국도가 그 앞을 달려가기 때문에 차창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이 여근곡 언저리의 동리를 오늘날은 신평(新坪)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속어로 '씹들'이다. 여근곡에 얽힌 성적인 전설은 매우 재미가 있다.
<선덕여왕과 여근곡에 얽힌 전설>
신라 27대 선덕여왕은 매우 총명한 여성이었다. 여왕이 어느 때 중국의 황제로부터 약간의 꽃씨와 작약곷의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 이 때 여왕은 "이 꽃에는 향기가 없을 것이다"하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자, 여왕은 이렇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 그림엔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나에게 남편이 없다고 황제가 나를 놀리려고 그림을 보내온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황제가 보내온 꽃씨를 뿌려 꽃을 피웠을 때 여왕의 말은 증명되었다.
이어 여왕은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일 때도 있었다. 선덕여왕 5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어느 추운 겨울흰 개구리가 서쪽에 있는 옥문지에서 울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신하들은 어떤 흉조라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현명한 여왕은 두 사람의 장군을 시켜 여근곡으로 출진하게 명하였다. 마침 그곳에는 5백여명의 백제군이 진을 치고 있었다. 재빨리 출동한 신라군은 이를 포위하여 모두 사로잡았다.
신하들은 감탄하였다. 어떻게 하여 적군이 그곳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느냐고 영왕에게 물었다. 여왕은 "하얀 것은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서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개구리가 우는 것은 두려워하는 군대가 나타났다는 의미, 그 개구리가 하얀 것은 여성의 기운이 왕성한 옥문의 여근곡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이 옥문에 들어간 것은 힘을 잃고 맥을 못추고 죽는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서 여왕은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사실 이 여근곡에 관한 전설은 당시의 일을 확인할 수 없는 데다가 그 여근곡을 일컫는 골짝은 수백명의 군사가 숨어 있을 만한 적지가 못된다. 다만 그 전설처럼 이상하리 만큼 둥글게 돋아있는 골짝 가운데 도톰하게 불그러진 복판 밑에서는 사시장철 질퍽한 물이 스며 나오고 있다. 바로 그 아래에는 물을 받아두는 못이 조성되었고, 그 밑으로 가면 그보다 조금 더 큰 못이 또 있다. 사서에도 나오는 이 여근곡에 나오는 전설은 그 바로 산등너머에 있는 부산성 골짜기에 적군이 숨어들어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나오게 한다. 적군이 침공하기 위하여 숨어 있기에는 지형적으로 부산성 골짜기가 깊기 때문이다.

 

부산성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산성.

사적 제25호. 둘레 4,977m. 부산성, 주사산성(朱砂山城)이라고도 한다. 경주의 서쪽에 있으며, 높이 700m 정도의 오봉산 정상을 중심으로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삼국사기〉와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663년(문무왕 3) 정월에 축조했으며, 산성 안에는 연못 1개, 계천(溪川) 4개, 우물 9개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경주에서 대구로 통하는 전략의 요충지로서, 선덕여왕 때 백제 군사가 이 산을 넘어 옥문곡(玉門谷:일명 女根谷)까지 침입한 일이 있은 후에, 도성(都城)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남산신성의 장창(長倉)을 축조하면서 동시에 쌓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성은 서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경주의 외곽성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석축은 가공하지 않은 안산암(安山巖) 석재를 써서 안팎을 쌓아올리고 내부에는 잡석을 채우는 협축법(夾築法)으로 쌓았다. 지금은 대부분 무너져서 형태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파손되어 있다. 다만 남문(南門)터를 비롯해 군창(軍倉)터·연병장터·주암사(朱巖寺)터 등 건물터와 우물터·못·암문(暗門)터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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